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버나드 로 몽고메리 (문단 편집) === 긍정적 평가 === 몽고메리의 전략적 식견은 그럭저럭 훌륭한 편이었다. 자신이 구성한 전략이 상황에 맞아떨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기다리는 인내심도 있었으며, 아군이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을 확실하게 계산하고 조성하는, 그리고 그 상황이 왔을 때 적을 압도해버리는 능력이 있었다. [[독빠]]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한국의 [[밀덕후]]들은 엘 알라메인의 전투를 소련군이나 벌일 법한 무식한 인해전술 어택땅으로 비하하지만, 그런 소모전이야말로 아군과 적군의 교환비와 작전목표의 성공여부에 대해서 확실한 계산이 서지 않는다면 벌일 수 없는 전투다. 또한 그 당시 아프리카 군단의 전투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경향도 있는데 무리한 공격으로 자멸했다고 욕먹는 롬멜이 무조건 공격만 한 게 아니라 재공격이 불가능해 보이자 엘 알라메인 방면에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방어선을 깔았고 공세를 시작한 몽고메리의 앞에는 [[지뢰]] 50만 발과 즐비하게 깔린 추축군 [[대전차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승리의 조건을 조성하는 능력에 대해서도 그냥 죽치고 있었다고 폄훼하는데, 사실 몽고메리가 취임할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계사를 조금만 훑어봐도 '''공격할 때가 아닌데 윗분들의 압박 때문에 무리하게 공격했다가 패배하거나 아니면 명령을 거부했다가 목이 잘린 장수'''는 엄청 많이 볼 수 있다.[* 당장 [[이순신]]도 이랬다가 [[정유재란]] 직전에 잘렸다. 그리고 그 후임자 [[원균]]은 이때다 싶어서 딸랑거리다가 역으로 본인도 윗선의 지시로 싸우러 나갔다가 함대를 몽땅 말아먹는 대참사를 저질렀다.] 이 말인 즉 윗분들의 말도 안 되는 명령을 회피하면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유능한 지휘관이다. 그의 뒤에 버티고 서 있는 처칠은 승리에 대한 조급증으로 몽고메리의 전임자들을 날려버린 전적이 있으며[* 전임자인 [[클로드 오킨렉]]은 롬멜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지만 처칠의 무리한 반격 요구를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가 짤렸다⋯. 정확히 말하면 오킨렉은 몽고메리의 상관인 해럴드 알렉산더의 전임자(둘 다 중동 사령관)지만 1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오킨렉이 8군까지 직접 지휘했으니 몽고메리의 전임자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본래 8군 지휘관은 닐 리치(Neil Ritchie) 중장이었으나 가잘라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면서 오킨렉에 의해 교체되었다.] 싱가포르 전투에서도 전멸할 때까지 싸우라는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아서 퍼시발]]이 일본군에게 무조건 항복하는 결과를 만든 적이 있다. 처칠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빨리 공격하라는 닦달을 했지만 몽고메리는 그런 압력을 무시하고 8군의 역량을 키우는 뚝심을 보였다. 그가 자신의 참모진들에게 가장 자주 했던 말버릇이 바로 "100% 확신하는가"였으며, 영국 8군이 롬멜에게 결정타를 먹일 병력과 자재를 계속해서 보존하여 알라메인의 승리를 거두어 내었다. 매우 까다롭고 욱하는 성격도 강했지만, 온갖 쌍욕을 입에 달고 살았던 라이벌 패튼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어휘를 구사하였으며, 부하들을 대놓고 닦달하기보다는 주로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조국 영국에 대한 애국심도 매우 강한 인물이었으며, 가족들에게도 무척 자상했던 아버지였다고 전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